예레미야 1장-52장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 9:11,13;17) 또는 고독의 선지자라고도 불리웁니다. 그의 이름의 뜻은.... 그는 아나돗의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서 20세 때인 요시아왕 13년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아 일평생 독신으로 살며 ( 16:1-4) 3명의 왕이 바뀌는 가운데 40년 이상 활동했습니다. 이사야보다(739-680) 몇십년 뒤에 나타난 예레미야는 (627-585) 하나님의 강권에 의하여 예언자의 직분을 맡게되었으나 (1:6) 그가 예언을 한 시대는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는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멸망 당할수 밖에 없었던 백성의 죄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꾸짖고 심판을 선언하는 인기없는 예언자의 생애를 살아야만 했습니다. 예루살렘 거리를 아무리 다녀도 믿음으로 사는 자를 발견하지 못하는 고민 속에서 ( 5:1) 몇번이나 이런 시대에 예언자의 직분을 맡은 것을 후회하며 하나님께 원망하기도 했으나( 20;7-9,14-18 ) 불같고 방망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23;29) 그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집에서 제사장의 아들들에 의해 매를 맞고 착고에 묶이기도 했고 ( 20:4-6) 매를 맞고 갇히기도 했으며 ( 37:15) 시위대 뜰에 있는 구덩이에 던져지기도 했습니다.( 38:1-6) 때로는 베띠를 허리에 동이고 말씀을 증거하기도 했으며 ( 13;1-2) 소같이 목에 멍에를 메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 27장)
처음 예레미야가 예언을 시작할 당시 왕이었던 요시아 왕은 예레미야와 마음을 함께 모아 종교개혁운동을 일으켰고 이것은 꽤 성공을 거두는 듯 싶었으나 요시야 왕이 무리하게 애굽 군대와 싸우다가 전사한 후 유대는 점점 패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국제정세는 앗수르를 멸망시킨 바벨론이 가장 강대국이었고 애굽도 다시 재기하는 때였습니다. 바벨론과 애굽이 양 강대국으로서 서로 세력다툼을 하는 와중에 유대 왕궁도 친 애굽파와 친 바벨론파로 나뉘었습니다.
당시 유다백성들은 애굽으로 동맹을 삼아 바벨론에 항거하자는 쪽과 바벨론과 협정을 맺자는 두 가지 견해가 있었습니다. 이때 예레미야는 애굽도 바벨론도 의지할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함을 강조했습니다.
요시아의 아들 여호아하스 왕 때로부터 계속 되는 바벨론의 침공 속에서 유다는 저항과 항복을 되풀이 하며 서서히 몰락하고 무너져 내립니다. 예레미야는 이 무너지는 유다왕국의 운명을 지켜보았지만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최후까지 백성들과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요시야 왕이 죽은 후 요시아의 둘째 아들 여호아하스가 17대 왕이 되었으나 3개월만에 애굽의 침공을 받아 애굽포로로 잡혀가고 요시아의 첫째 아들 여호야김이 애굽에 의해 18대 왕이 되었으나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정책혼선을 빚다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다가 되돌아와 죽었습니다. (36:30, 대하 36;6) 여호야김 왕은 한 때 백성들과 함께 금식기도를 하는 등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듯 싶었으나 영적 분별력이 부족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예레미야의 글을 불에 태우는 짓을 저질렀습니다. ( 36:20-26) 그 아들 19대 왕 여호야긴(고니야 또는 여고니아로도 불리움)은 바벨론에 잡혀가 결국 37년 동안 포로생활을 했으며 그 후 그 삼촌인 시드기야가 유다의 마지막 20대 왕이 되어 11년 동안 바벨론의 봉신으로 왕 노릇을 하다가 바벨론에 반기를 들게 되었습니다. 시드기야는 한때 성경대로 바른 정치를 하려고 하려했으나 상황이 급해지자 다시 약속을 번복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34장) 그러다가 드디어 B.C. 586년 느부갓네살의 마지막 침공에 의해 유대는 완전히 멸망했고 시드기야가 두 눈이 뽑힌 채로 바벨론에 잡혀가는 것으로 유다의 역사는 끝나고 말았습니다. ( 렘 39:1-10, 52:1-11)
시드기야 왕을 잡아간 마지막 바벨론의 침공 때 예레미야도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행렬 속에 있다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명령으로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에 의해 풀려나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 39-40장) 그때 그가 부른 눈물의 노래가 바로 예레미야 애가입니다. ( 哀歌 히브리어 '애카'= 아, 슬프다! Lamentation)
이스라엘 땅에 남아있던 유대 민족은 바벨론이 임명한 유대 출신 총독 그달랴의 지도를 받으며 살게 되나 그달랴를 반대하는 이스마엘이 그달랴를 암살하고 (41장)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워 남은 백성들을 암몬 땅으로 끌고 가려했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스마엘을 반대하던 요하난이 이스마엘을 물리치고 백성들을 지도하게 되는 데 요하난은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바벨론을 추천하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백성들을 이끌어 애굽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때 요하난은 강제로 애굽으로 예레미야를 따라가게 함으로서 예레미야도 애굽으로 강제로 따라가게 됨으로 예레미야의 역사적 사건은 마치게 됩니다.( 42장-45장) 전승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애굽에서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예레미야서가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런 여러 사건들이 역사적 순서대로 기록되지 않고 섞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친구이며 기록자인 바룩( 32:12, 36:4,10, 51;59)에 의해 주로 기록된 것으로 여겨지는 예레미야서는 역사적 사실을 순서대로 기록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이런 비극적 사건들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 지를 영적으로 해석하며 신앙적 원인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연대기는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예언은 절망 만은 아니었습니다. 렘 29장은 포로 생활 속에서 당당히 열심히 살라는 교훈을 주며 (29;11-13) 어떤 절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 가운데 애가에서 그는 아침마다 새로운 소망을 이야기 합니다. (3:17-28)
예레미야의 외침
살구나무 환상 ( 1;11-12) 샤케드와 쇼케드
쇠기둥과 놋 성벽 ( 1:17-19)
스스로 판 웅덩이 ( 2;13)
눈 화장이 아니라 마음을 ( 4:30)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 5;1)
'여호와의 전'을 이용 말라 ( 7:1-7)
때를 알고 돌아오라 ( 8:4-7)
길르앗의 유향 ( 7:21-22)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 12:5)
유브라데에 감춘 허리 띠 ( 13:1-7)
복있는 사람 ( 17;7-8)
자고새의 알 ( 17:9-11)
나를 고치소서 ( 17:14)
토기장이 ( 18:1-4)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 20:7-9)
불같은 하나님의 말 ( 23;25-30)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 29:11-13)
라헬의 애곡 ( 31:15)
상쾌한 꿈 ( 31:25-26)
내 죄는 내 책임 ( 31:29-30)
토지 매매 비유 ( 32;6-15)
부르짖으라 ( 33;2-3)
여인들의 불평 ( 44;15-19)
여호와와 연합하라 ( 50:4-5)
< 예레미야 애가 >
지나가는 자여 너희는 ( 1:12)
나라를 위한 눈물 ( 2;11)
눈물의 기도 ( 2;18-19)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 ( 3: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