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1장- 10장 )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후 이스라엘 자손의 어떤 이들은 앗수르로, 어떤 이들은 애굽으로, 대다수는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고 70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성경 중에서 포로 된 이후의 책은 모두 8권 즉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에스겔, 다니엘, 학개, 스가랴, 말라기인데, 그 중에서 첫 번째 책이 에스라입니다. 에스라서의 주요 역사적인 사실은 80년 차이로 크게 두가지로 구분됩니다. ( * 에스라는 성전건축, 느헤미야는 성벽건축)
1) B.C. 538년 다윗 왕가의 후손인 스룹바벨의 인도하의 제 1차 귀환 ( 에스라 1:1-11)
2) B.C. 457년 아론의 후손인 제사장 에스라의 인도하의 제 2차 귀환 ( 에스라 7:1-10)
먼저 에스라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에스라서는 에스라가 썼다고 하지만 1장부터 6장까지는 에스라의 이름이 한번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1장부터 6장까지는 에스라가 두 번째로 귀환하기 전 즉 80년 전 1차로 귀환했던 지도자 스룹바벨과 제사장 예수와와 5만명의 사람들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애썼던 기록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6장에서 성전이 20년만에 완공되고 나서 이번에 에스라가 성전이 완공된 지 60년만에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부흥시키기 위해 귀국한 것이 7-10장의 내용입니다.
지난 70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돌이켜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만히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먼저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은 바벨론 왕에 의해 특채되어 바벨론의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이어 바사의 새 황제인 고레스에게도 크게 인정받는 대 정치인이었습니다.(단 6:28) 특히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다니엘은 고레스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여집니다.(단 9:1-11) 한편 그 뒤에 포로로 잡혀간 에스겔도 바벨론의 이스라엘 포로 주거지인 그발강가에서 소명을 받아 예언 활동을 하였습니다. 바벨론의 포로 70년 세월은 절망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시편 137편에는 이 시기의 절망이 깊이 아로 새겨져 있습니다. 훗날 계시록은 이 세상의 모든 힘이 강하고 악한 적 그리스도의 세력을 바벨론이라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계 17:1-5)
드디어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이 지나(렘 25:11,12, 렘 29:10, 대하 36:22) B.C.539년 10월 바벨론이 고레스왕의 바사(페르샤-지금의 이란)에 무너지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새 제국 바사(페르샤)의 황제가 된 고레스(의미:태양,왕좌)는 이미 성경에 여러번 예언된 인물로서 대단한 인정을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사45:1, 사44:28, 대하36:22,23, 스1:1,2:5, 스3:7, 스1:7-11) 고레스는 포로해방을 선언하고 유대인들이 본토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건축하며 살아도 좋다는 해방령을 내렸습니다. 물론 완전한 독립은 아니고 속국으로서 자치권을 행사하게 하는 것이였지만 70년만의 해방이었습니다. 5만여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레스의 전격적인 지원을 받아 많은 금품까지 얻고 고국 땅에 돌아왔습니다. 이때의 지도자는 다윗가문의 후손인 스룹바벨과 제사장 에수아(여호수아) 였고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고국에 돌아와 가장 먼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로 했을 때 백성들은 감격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3:12-13)
예루살렘 성전 재건공사는 B.C. 536년에 시작되었으나(3:8), 그 해에 중단되었고 그후 무려 16년 후인 B.C. 520년에 재개되어(학 1:15) 4년만인 B.C. 516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스 6:15)
문제는 이미 고국 땅에 그동안 살아왔던 사마리아 계열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면서(B.C. 722년) 그 백성들을 앗수르 땅으로 끌고 가는 대신 `바벨론', `구다', `아와' 그리고 `하맛' 과 `스발와임'에서 사람들을 옮겨옴으로써 생겨난 민족이었습니다(왕하 17:23, 24). 즉, 사마리아 사람은 타 지역에서 옮겨온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들 중 끌려가지 아니한 사람 사이의 혼혈족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개건 작업에 동참시켜주지 않자 고레스에게 계속 투서를 해 성전건축을 지연시키는 방해 공작을 계속하여 결국 성전 건축 작업은 16년동안 중단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의 어떤 소식으로 인하여 매우 슬퍼 했었는데 (단 10:2) 그것은 틀림없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됐다는 소식이었을 것이며, 그때가 바로 고레스 왕 3년이었습니다(단 10:1). 그러나 예언자 학개, 스가랴는 이 성전 공사를 재개하자고 스룹바벨과 백성들을 계속 격려했고 드디어 B.C .515년 다리오왕 1세 때에 성전건축을 재허락을 받아 4년간의 건축 후 비로소 완공됩니다. 이 '스룹바벨' 성전은 A.D. 70년 로마의 '디도'(Titus) 장군에게 파괴되기까지 약 585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중심 장소가 되었습니다. ( 솔로몬 성전은 373년 동안 역할 B.C. 959-586)
< 에스라서 7장- 14장>
에스라서의 2편격인 7장부터 10장까지는 이제 성전건축 60여년 후에 아닥사스다 왕이 다스리던 바사제국의 고위관리였던 에스라가 고국 백성들의 신앙의 타락과 잡혼으로 해이해진 윤리 기장을 안타까워하며 귀국을 결심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미 이 당시는 지도자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가 나이가 들어 늙었거나 이미 세상을 떠난 때였습니다. 에스라는 아론지파 스라야의 아들이며 이름이 '도움, 돕는 자'를 의미하며 '아사랴'로도 불리웠는 데(느10:2) 그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이며 제사장(스7:1-6)이었습니다.
왕궁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그의 귀국은 모세가 애굽왕궁을 떠난 것만큼 과감한 결단이었습니다. 그는 1754명의 인원과 무려 4개월을 여행을 거쳐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귀국하여 금식을 선포하고(스8:21-23) 각종 개혁을 실시했고(스9:1-15) 백성들에게 율법책을 낭독하여 가르쳤습니다. (느8:1-18) 특히 9장은 그가 얼마나 훗날 그는 그보다 14년 후에 귀국한 느헤미야의 성벽건축에 참여했고 예루살렘 성벽 낙성식에 참여했습니다. (느 12:27-43)
*( 성경에는 세 명의 에스라가 있음 - 본문의 에스라와 스룹바벨과 함께 돌아온 제사장(느 12:1), 갈렙의 자손(대4:15-17)입니다.
에스라의 주요 내용
1장 (11절) 1차 포로귀환 2장 (70절) 귀환자의 명단
3장 (13절) 성전재건 착수 4장 (24절) 성전공사 중단
5장 (17절) 성전공사 재개 6장 (22절) 성전재건 완공
7장 (28절) 에스라와 2차 포로귀환 8장 (36절) 2차 귀환자의 명단과 여정
9장 (15절) 잡혼과 회개기도 10장 (44절) 에스라의 성별운동